사기 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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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2. 상세

1. 개요 [편집]

사기 차씨 司記 車氏[1]

? ~ 1444.(음)7월 10일 경복궁 연생전.[2]

2. 상세 [편집]

조선 제 4대 왕 세종의 승은을 입은 궁인 출신으로 관례와는 다르게 임신을 하였음에도 후궁이 되거나 사기의 관직을 벗어나지 못한 특수한 경우이다.

더군다나 세종의 슬하엔 왕자는 많았으나 당시 왕녀는 소헌왕후 소생의 정소공주정의공주 자매 뿐이었다.

차씨가 1430년 낳은 셋째 왕녀는 1431년 요절하였고 세종과의 슬하에 더이상 후사를 두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1444년 (음)7월 10일 경복궁 연생전에 이날 벼락이 내리쳐 내관을 비롯한 여러 궁인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때 죽은 궁인들 중 차씨도 있었다.

세종은 죽은 왕녀의 생모임을 감안하여 장례에 쓸 물품을 부의한다.
[1] 사기(司記)는 조선 초 내명부 정6품의 관직으로 주로 궐안 문서의 출납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2] 이날 천둥번개가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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